Wednesday, March 27, 2024

하우스 House

이십 년이나 지난 드라마를 계속 보고 있다.

하우스는 내 기억 속의 하우스보다 평범했고 현명했고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하우스와 비슷해 졌다. 나도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다니며 자발적이진 않지만 상당량의 약을 집어 삼키고 있고 성격도 다소 냉소적이게 되었다. 이제 알게 된 건데, 극 중에는 내가 겪고 있는 병의 진단명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검사는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자신의 경우가 아니면 어떤 것이라도 듣고 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사람은 그래서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하우스의 말과 행동에 공감되는 것이 많다는 것에 매우 놀라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찌질하고 못 났는데, 거기에다 껍데기만 남은 자존심을 부여잡고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부각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하우스와 나이가 엇비슷해 져버렸는데, 난 하우스 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 했고, 괴팍함을 감싸 줄 만큼의 명성도 얻지 못 했다. 게다가 이제 나에게는 이전과는 다름 셈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을 가늠해야 하는 것에도 뭔가 입 안에서 쓴맛이 난다. 제길.

그래서, 그 나이 때문에 혹은 남아 있는 세월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이십 여년 전에는 극중 젊은 의사들에게 공감했던 것일까?


Monday, January 29, 2024

한 주의 루틴

  • 와요일
  • 주술회전
  • 장송의 프리렌 
에서 
  • 와요일
  • 던전밥
  • 장송의 프리렌
  • 혼자만 레벨업
으로 바뀌었다.
일상 밖은 환타지.

Monday, December 25, 2023

1940년 체제를 읽기 시작하며

오래 전 이 블로그에서 적은 일이 있는 것처럼, 서체 크기는 독자에 대한 편집자의 '예의'이다. 특히 괄호 안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그들의 '심미적' 관점에 따라 서체 크기를 대폭 줄여서 병기하는 것은, 역사수업에서 행위예술을 하는 교수와 같은 꼴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돋보기를 꺼내거나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봐야할 일을 만드는 건 정말 달갑지 않다. 책의 가치를 확연히 떨어뜨리는 편집자의 아-트이다. 문자의 나열로 예술을 하고 싶다면, 독자를 위한 책을 편집할 것이 아니라, 관람자를 상정한 어떤 것을 만들어 전시를 하는 게 옳겠다.

Sunday, December 17, 2023

모나크 그만 보기로 했다 - Monarch: Legacy of Monsters

반가웠다

테이프 카트리지는 정말 오래간 만에 봤다. 향수가 밀려와 쓰나미가 되었다. 신입 시절 내가 가장 재미있어 했던 것이 테이프 스토리지들이었다. 릴(reel) 테이프부터 DAT까지 애정을 듬뿍 주던 매체였다. $ tar cvf /dev/rmt/0 `pwd`/* 그 중에 QIC-24를 정말 좋아했다. 특유의 무게감이나 드라이버에 로드될 때의 기계작동 소리는 키보드를 두들겨 명령어를 입력할 맛이 났다. 바람소리 쉭쉭 나는 릴 테이프나 장난감 같았던 DAT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업계에 발을 딛게 되었을 대에도 QIC는 희귀해지기 시작했을 때여서 더 애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릴 테이프도 매력적이었는데, 종일 골방에 갇혀 릴 테이프의 데이터를 DAT로 이전하는 삽질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날 동안 계속 하게 된 경험만 없었다면 최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깜짝 놀랐다

주인공의 배다른 형제의 전 여자친구는 테이프 카트리지를 뜯어서 무명 가수의 버려진 데모 (릴) 테이프를 걸어 보는 느낌으로 어떤 곳에 걸고 최신 컴퓨터로 읽어들인다. 그리고 암호화 되어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리고 인터넷에서 복호화를 위한 키를 다운로드 받아서 암호화를 해제했다. (뭐?! 뭐라고??)

테이프 드라이버는 매우 정교한 장치이다. 속도 제어에서 해드의 역할까지 많은 부분이 직소퍼즐처럼 딱 맞게 돌아가야 한다. 카트리지를 뜯어서 테이프를 꺼내어 아무데나 걸어 본다고 내용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수의 워크맨으로 녹음한 테이프를 영희네 전축에 집어 넣어서 들을 수 있는 그런 매체가 아니란 말이다.


머리를 맞은 듯 했다

70년대 저장된 테이프 카트리지가 멀쩡하게 전자기적 특성을 현재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마치 진나라 시황제가 불로초를 먹고 지금까지 살아서 대륙을 통치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거기에다가 이 놈은 (아마도) 오랫동안 바닷물에 쩔어서 대양을 헤매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테이프의 데이터가 살아 있을 확률은 진나라 시황제가 불로초를 먹은 뒤로 지금까지 단식 중인데, 여전히 건강하게 대륙을 통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미친 듯이 웃었다

70년대 QIC라면 - 아무리 돌려봐도 QIC 맞다 - 20MB 정도 저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 보다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두 배를 넘지 못 했을 것이다. 1990년에 출시된 SunOS 4.1.1이 수록된 QIC-24 테이프 카트리지의 용량이 아마도 60MB? 

ok> boot tape


이 용량의 테이프 스토리지에서 고해상도 사진, 문서, 지도 모두 엄청난 수량과 현재 시점에도 놀랄만한 속도로 데이터 로딩이 되었다. (현실 고증을 한다면 컵라면을 다 익혀 먹고 담배 한 대 핀 다음 남은 국물을 원샷하면 첫 번째 파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에 고해상도 디지털 사진과, 총천연색 데이터 스캐닝과, 각종 종이 문서를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저 좁디 좁은 테이프에 저장하기 위해 도대체 어떤 류의 기술을 어떤 디바이스에서 사용했단 말인가? 


이 시리즈는 성실하지 못 한 작품이다.

영화든, TV 시리즈이든, 뭐든 간에 앞 뒤가 맞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위 말해서 ‘세계관’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면 말이다. 고질라 시리즈는 비현실적인 괴수들이 ‘지금’ 우리가 가진 여러가지 방법으로 물리치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거나, 그에 걸 맞는 괴수급의 생명체들이 등장하여 재난 판타지를 만들어 내면 된다. 고질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기 정말 좋은 소재로 많은 고질라(류) 영화와 TV 시리즈들이 서로 다른 컨셉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난 그 중에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 고질라 (2016) シン・ゴジラ'를 좋아한다. 둘 다 고질라라는 소재를 가지고 개성 가득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모나크라는 단체가 70년대에 오버 테크놀로지를 영위하던 특별한 단체라면, 영상 초기에 등장하는 그 테이프 스토리지 소유자가 손에는 8mm 카메라 대신 MD와 같은 광학매체에 영상이 저장되는, 쌔끈한 디지털 캠이 있으면 되었고, 각종 현대의 과학기술을 초월하는 장비들이 주머니와 가방에 있었다면, QIC로 보이는 그 테이프 카트리지가 겉보기와는 다른 특별한 무엇으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배다른 형제의 전 여친의 집에서 철 지난 데모 테이프 취급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라,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모나크가 이들에게 그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런 빌드-업은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 다시 말하면, ‘기본기 속에 녹아 있어야 할 성실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실소를 거듭하면서 이 TV 시리즈는 시간을 투자해서 볼만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Monarch - Apple TV


Sunday, November 26, 2023

은하철도의 밤 | 銀河鉄道の夜

 




사람은 추억으로 살고, 기억에 의해 그 사람이 정의되다.
인생의 끝은, 추억이 닳고 기억이 상실되는 순간일 것이다.